교과서에 실릴 수 있을까? 공공 언어로서의 신조어 가능성에 대해 알아볼게요.

신조어는 왜 생기고, 왜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신조어와 마주합니다. “만반잘부”, “억까”, “스불재”, “TMI”, “꾸안꾸” 등은 이미 10대~30대 사이에서는 하나의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죠.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은 왜 국어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걸까요? 단순히 ‘낯설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신조어의 탄생은 ‘언어의 생명력’
신조어는 특정 세대, 커뮤니티, 시대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감정이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창조적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현타”(현실 자각 타임): 게임이나 몰입 상태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무력감을 짧고 강하게 표현
“뽀시래기”: 귀엽고 작은 존재를 부르는 신조어, 주로 애정 표현
“가심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반영
이처럼 신조어는 기존 언어로는 포착하기 힘든 감정,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며 언어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교과서에 실리기 어려운 이유
하지만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단순한 ‘인기’ 이상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이나 공공 언어는 다음 조건을 고려합니다.
지속성과 보편성: 유행을 넘는 장기적 사용 가능성
정확한 정의와 문법적 일관성: 사전적 의미가 명확히 규정 가능해야 함
세대 간 수용 가능성: 교육 현장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함
사회적 가치 판단: 혐오, 왜곡, 상업적 조어일 경우 부정적 영향 우려
즉, 신조어는 창조적이지만 아직은 공공 언어로 채택되기엔 불안정하고 감정적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일부 신조어는 매년 조사하고 검토하지만, 사전에 등재되거나 교과서에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실제로 표준어가 된 신조어도 있다?
신조어가 교과서에 실릴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신조어도 ‘표준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너무 익숙하게 쓰는 단어들도 사실 과거에는 신조어였습니다.
표준어로 자리 잡은 옛 신조어들
“냉면”: 조선 후기에는 없던 조어. 일제강점기 이후 만들어진 혼성어
“만화”: 일본어식 표현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국어사전에 정식 등재
“인터넷”, “블로그”, “핸드폰”: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퍼진 외래어 기반 신조어
이 단어들은 탄생 당시에는 “외래어가 국어를 망친다”는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용례가 축적되고, 발화 공동체가 넓어지며 표준화됐습니다.
사전에 등재된 최신 신조어 예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매년 신어와 변화된 어휘를 검토해 등재합니다. 예를 들어: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의 줄임말. 비공식적 단어지만 이미 뉴스와 논문에서도 사용되며 등재 가능성 논의 중
“먹방”: 먹는 방송의 줄임말. 현재 ‘방송’ 분야의 신어로 일부 사전에서는 등재
“셀카”: ‘셀프 카메라’에서 유래, 지금은 국립국어원에서도 등재 인정
즉, 신조어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으며, 일부는 교과서나 공적 문서에도 채택 가능한 어휘로 진화합니다. 관건은 단어의 생명력과 사회적 수용성입니다.
공공 언어로서 신조어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그렇다면 신조어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공공 언어와 공존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모든 신조어가 교과서에 실리거나 공문서에 쓰일 수는 없지만, 신조어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금지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긍정적 접근: 신조어는 청소년의 언어 실험실
교육계와 언어 정책은 신조어를 단순한 ‘언어 오염’이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을 위한 단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신조어 해석하기: 언어 창조의 원리를 가르치는 수업
세대 간 대화 과제 만들기: 조부모와 손주가 서로의 언어를 소개
공공 캠페인에 신조어 활용: “심쿵한 안전수칙”, “TMI 없이 딱 이거!”
이처럼 신조어는 문해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교육에 적극 활용될 수 있습니다.
위험 요소: 혐오·비속어화 우려
다만 모든 신조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차별, 혐오, 외모 지적, 성적 비하 등 부정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예를 들면:
“관종”, “된장녀”, “벌구새”(벌레+구더기+새끼의 조합) 등
특정 성별, 인종, 지역을 희화화하는 표현
이런 단어들은 공공 언어로는 절대 수용될 수 없으며, 언어 윤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사회적 규범이 작동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신조어는 공공 언어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채택은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으며, 사용 맥락과 의도에 따라 철저히 선별돼야 한다.
교과서에 실릴 ‘신조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이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언어에서 많은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변화는 막을 수 없고, 언어는 살아 움직입니다. 중요한 건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신조어가 교과서에 실리기 위해선 단순한 유행을 넘은 문화적, 사회적 합의와 언어적 정제가 필요합니다.
‘그냥 재밌으니까 써!’라는 감각에서, ‘모두가 이해하고, 함께 쓸 수 있는 말’로 다듬어질 때, 신조어도 표준어가 되고, 교육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